취미/영화,드라마,방송

일본영화 분노(怒) - 소름끼치게 무서운 감정묘사

집순이@ 2017. 7. 18. 08:41


오랫만에 일본 스릴러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난주에 '악녀'를 보고나서 적잖이 실망을 했었는다. 왜냐하면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화이'를 비롯해서 국정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짬뽕해 놓은 듯한 느낌이어서 보고나서도 공허한 마음이 많이 들었기때문이다. 한국영화를 좋아하지 않아서 자막을 보기 귀찮을 만큼 피곤한 날이 아니면 외국영화를 주로 본다. 스릴러 영화이다. 



기대 없이 그저 선택한 영화, 그렇지만 큰 여운 




영화 '분노'는 요시다슈이치의 원작 소설 '분노'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이다. 이 소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는데, 바로 외국인 여강사를 죽이고 수차례 성형하며 도망다닌 이치하시 다쓰야 사건이다. 놀라운 것은 방송에서 성형 한 후 얼굴이 달라진 용의자를 공개수배하게 되는데 무려 1,000건의 제보전화가 왔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서는 길에서 우연히 본 것 같은, 그저 닮은 것 같은 사람 뿐만 아니라 가족과 같이 아주 가까운 사람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한가지 사건을 두고 3개의 이야기를 그린 옴니버스식 영화의 구조를 띠고 있다.  도쿄에서 일어난 잔인한 살인사건, 번인은 현장에 '분노'라고 쓰인 글자를 남겨두고 얼굴을 성형하고 도망쳤다. 그로부터 1년 후 각각 다른 공간에서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고 있는 신원불상의 3명의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이다. 






세 가지 이야기, 같은 시공간에 있는 듯한 전개 



가출한뒤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다 고향으로 잡혀온 아이코는 외지에서 불현듯 나타난 타시로와 좋은 감정을 키우지만 끝내는 그를 의심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의심과 불신은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나만의 오해와 자격지심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나같은 여자를 사랑할 리 없다고..." 



도쿄의 샐러리맨 유마는 게이인데 우연히 게이파티에서 만남 나오토와 동거를 시작한다. 무료한 삶에 뭔가 의기소침해보이고 무기력해보이는 나오토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지만 그의 주변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나오토를 의심한다.  



마지막으로 오키나와에 전학을 오게 된 여고생은 여행 중인 남자와 우연히 조우하게 되는데...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진심은 전해지지 않아.." 


이 세명의 이방인은 이들 삶 속에 동화되어 살아가는데.... 


셋 중 누구라고 범인을 단정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 또한 세 사람을 번갈아가면서 의심하고 있었기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내 긴장했고, 지루하거나 늘어진 느낌 또한 없었다. 





      


우울하거나,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청불 영화이긴 하지만 그런 장면은 일부분이다. 간간히 게이, 강간 코드가 있긴 하지만 오키나와의 푸른 바다라던가 아이코가 아버지와 타시로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모습과 같은 장면에서 영화는 시종일관 따뜻함을 전한다. 아이코역의 미야자키 아오이(みやざきあおい,4세에 아역데뷔로 현재까지 활발히활동하는 일본의 국민 여배우임는 국내배우인 꼬부기 하연수와 소녀시대 윤아를 닮은듯.... 사랑하는 타시로를 살인범으로 오인해 신고를 하고서 비를 맞고 떠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칠 정도 였다. 연기 정말 잘한다.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초호화 캐스팅으로 우려가 많았지만 그런 우려 따위는 일거에 날려버릴 만큰 괜찮은 구성과 연출이었다.  






인간의 슬픔, 분노, 억울함과 같은 감정에 대하여


 전달되지 못하는 진심에 대한 인간의 슬픔과 분노라는 것. 아무리 외쳐도 바뀌는 것은 없고, 그 슬픔을 오로지 혼자 삭혀야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놀랍게도 섬세하게 담아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과 사랑이 어느 덧 불신이 되고 그 불신은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을 낳는다. 우리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세대 간 갈등, 남녀 간 갈등, 노사 간 갈등 누구하나 믿지 못하고 양보하지 않는다. 끝을 볼 때까지 싸워야한다. 이러한 불신으로 인한 분노는 사회 곳곳을 멍들게 한다. 일본영화는 현실적이어서 참 좋다. 우리 드라마와 같이 재벌2세, 국정원 직원, 가난하지만 씩씩한 주인공 따윈 없다. 드라마 마더 이후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여서 좋다.